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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장보고의 어린 시절, "너는 천민이야"라는 무시를 바다로 이긴 소년

by onary 2025. 11. 17.

9세기 초, 신라 완도(莞島) 근처. 바닷가 마을. 가난하고, 신분도 낮은 집안. 궁파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신라의 골품제 사회에서, 신분이 낮다는 것은 평생의 한계를 의미했다. 하지만 이 소년은 훗날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장악했고, 청해진 대사가 되었으며, 신라인 노예무역을 종식시켰다.

이것은 천민출신으로 태어난 한 소년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장차 바다를 장악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장보고의 어린 시절, "너는 천민이야"라는 무시를 바다로 이긴 소년

1.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 천민의 삶

810년경, 궁파 10세. 궁파는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다. 집은 허름했고, 아버지는 배를 저어 고기를 잡았으며, 어머니는 그물을 손질했다. 가난했지만 바다는 늘 그곳에 있었다. 어느 날, 마을 귀족 자제가 지나가며 말했다.

"이 동네는 왜 이렇게 냄새가 나지? 천한 놈들이 사는 곳이라 그런가?"

궁파는 그 말을 들었지만 대꾸하지 못했다.

그때 궁파의 아버지가 말했다.

"궁파야, 우리는 비록 가난하고 신분이 낮지만, 바다가 있다. 바다는 넓고, 바다는 공평하다. 바다에서는 신분이 중요하지 않아. 배를 잘 다루고, 물길을 잘 읽고, 용기가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지."

궁파는 바다를 봤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10세 소년은 궁금했다.

812년경, 궁파 12세. 궁파는 배 타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를 따라 바다에 나갔고, 노를 젓는 법을 익혔으며, 물고기를 잡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그리고 궁파는 발견했다. 육지에서는 신분의 벽이 있었지만, 바다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오직 파도와 바람과 싸우면 됐다. 12세 소년은 바다에서 자유를 느꼈다.

 

2. 15세, 당나라행 배를 타다 - "세상은 넓다"

815년경, 궁파 15세. 마을에 당나라 가는 무역선이 왔다. 선장이 뱃사람을 모집했다.

"당나라까지 갈 사람 있나? 젊고 힘센 사람이면 된다." 궁파가 나섰다.

"저요! 저 갈 수 있어요!"

선장이 궁파를 봤다.

"너 몇 살이냐?"

"15살이요."

"어린데... 하지만 팔은 튼튼해 보이는구나. 좋다, 타라."

이렇게 하여 궁파는 처음으로 당나라행 배를 탔다. 신라를 떠나 서해를 건너는 긴 여정이었다. 배는 흔들렸고, 파도는 높았으며, 풍랑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궁파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흥분되었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 궁파를 설레게 했다.  며칠 후, 당나라 산둥반도(山東半島)에 도착했다. 궁파는 처음 보는 광경에 압도되었다. 거대한 항구, 수많은 배, 다양한 사람들. 신라인도 있었고, 당나라 사람도 있었으며, 일본인도 있었고, 서역 상인도 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넓구나."

15세 소년의 눈이 커졌다. 신라의 작은 마을에서만 살았던 소년에게, 이것은 새로운 세계였다. 항구에서 궁파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노예 시장. 그런데 그곳에 신라 사람들이 있었다.

"신라인 노예! 값싸게 팔아요!"

상인이 외쳤다. 궁파는 다가가서 물었다.

"왜... 왜 신라 사람들이 노예로 팔리나요?" 상인이 대답했다.

"해적들이 신라 사람들을 납치해서 팔아. 돈이 되거든." 궁파는 분노했다.

'우리 사람들이... 물건처럼 팔리고 있다.' 15세 소년의 가슴에 불이 붙었다.

 

3. 20대, 당나라에서 무예를 익히다 - "강해져야 한다"

818년경, 궁파 18세.  궁파는 당나라에 남기로 결심했다. 신라로 돌아가봐야 신분의 벽이 있을 뿐이었고, 당나라에는 기회가 있었다.

무령군(武寧軍)에 입대했다. 당나라 군대. 신라인이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무시당했지만, 궁파는 포기하지 않았다. 훈련은 혹독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칼을 휘둘렀고, 말을 탔으며, 활을 쏘았다. 하지만 궁파는 버텼다.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면...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못한다.'

몇 년 후, 궁파는 두각을 나타냈다. 전투에서 용맹했고, 부하들을 잘 이끌었으며, 전략도 뛰어났다. 당나라 장군들도 인정했다.

"궁파는 비록 신라인이지만, 훌륭한 장수다."

궁파는 소장(小將, 낮은 직급의 장교)이 되었다. 신분이 낮았던 소년이 당나라 군대에서 장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궁파는 잊지 않았다. 항구에서 본 신라인 노예들.

'언젠가... 저 노예무역을 막아야 한다.'

20대 청년의 결심이었다.

 

4. 828년, 신라로 돌아오다 - "청해진을 세우겠다"

828년, 궁파 28세. 당나라에서 10년 넘게 무예를 익히고 경험을 쌓은 후, 궁파는 신라로 돌아왔다. 더 이상 궁파가 아니었다.

장보고(張保皐). 당나라식 이름을 쓰고 있었고, 군인으로서의 자신감도 생겼다. 신라 흥덕왕을 알현했다.

"전하, 신라인들이 당나라와 일본에서 노예로 팔리고 있습니다." 흥덕왕이 놀랐다.

"무슨 말이냐?"

"해적들이 신라 백성을 납치해서 노예로 팔고 있습니다. 이것을 막아야 합니다."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

장보고가 대답했다.

"완도에 진(鎭)을 설치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해적을 소탕하고, 바닷길을 안전하게 만들겠습니다."

흥덕왕이 고민했다. 장보고는 신분이 낮았고, 이런 큰 권한을 주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신라인 노예무역 문제는 심각했다.

"좋다. 청해진(清海鎭)을 설치하고, 그대를 대사(大使)로 임명한다."

828년, 청해진 설치.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세웠다. 1만 명의 군사를 이끌었고, 해적을 소탕했으며, 바닷길을 장악했다. 그리고 신라인 노예무역을 막기 시작했다.

 

5. 830~840년대, 해상왕이 되다 - "바다의 왕"

830년대, 장보고는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장악했다.

신라와 당나라, 일본을 잇는 무역을 독점했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해상왕이라 불렸다. 신분이 낮았던 소년이, 바다에서 왕이 된 것이다. 육지에서는 골품제가 그를 가로막았지만, 바다에서는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장보고의 야심은 더 컸다.

841년, 신라 왕위 다툼에 개입했다. 민애왕을 폐위시키고, 신무왕을 옹립했다. 장보고는 자신의 딸을 왕비로 삼으려 했다. 천민 출신이 왕실과 혼인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신라 귀족들이 반발했다.

"천한 출신이 감히 왕실과 혼인하려 하다니!" 결국 혼인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846년, 장보고는 암살당했다. 신라 조정이 보낸 자객에 의해.

 

🌸 결론: 신분의 벽을 바다로 넘은 소년

장보고의 어린 시절은 천민의 삶이었다. 가난했고, 신분이 낮았으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너는 천민이야."

10세 소년이 들었던 말. 하지만 장보고는 포기하지 않았다. 바다를 봤고, 15세에 당나라로 갔으며, 20대에 무예를 익혔다. 그리고 28세에 청해진을 세웠고,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장악했으며, 해상왕이 되었다. 신분의 벽은 육지에만 있었다. 바다에는 신분이 없었다. 장보고가 남긴 것은 부와 권력만이 아니었다.

"신분은 운명이 아니다. 바다는 공평하다. 실력으로 증명할 수 있다."

이것이 장보고가 보여준 삶이었다. 10세에 천민이라 무시당했던 소년은, 30대에 해상왕이 되어 동아시아 바다를 지배했다. 비록 46세에 암살당했지만, 그가 보여준 것은 명확했다. 신분의 한계는 스스로 깨뜨릴 수 있다는 것. 1,2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천민 출신에서 해상왕으로. 신분의 벽을 바다로 넘은 장보고로. 이것이 장보고가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바다가 만든 영웅의 이야기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4, 열전4 장보고전 - 한국고전번역원
  • 『신당서(新唐書)』 동이열전 신라조
  • 일본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 엔닌

참고 서적

  • 김문경, 『장보고 시대의 해상활동』, 고려대학교출판부, 2012
  • 윤명철, 『장보고 연구』, 학연문화사, 2002
  • 이영, 『해상왕 장보고』, 일조각, 1999
  • 권덕영, 『고대한일관계사』, 일조각, 2005

학술 논문

  • 권덕영, "장보고의 해상활동과 청해진", 『한국고대사연구』
  • 김문경, "장보고와 동아시아 해상무역", 『역사학보』
  • 윤명철, "청해진의 설치와 그 기능", 『한국사연구』
  • 이영, "장보고의 신분과 활동", 『신라문화』

관련 유적

  • 완도 청해진 유적 (사적 제308호) - 전남 완도군
  • 장보고기념관 - 전남 완도군
  • 법화원지 (장보고 관련 사찰터) - 산둥성 적산촌

관련 기관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 한국고전번역원
  • 완도 장보고기념관

참고 사이트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문화재청

※ 본 글은 『삼국사기』 장보고전과 관련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장보고의 어린 시절과 출신 신분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매우 제한적이며, 당시 해상 활동 환경, 신라 골품제 사회, 신라인 노예무역 상황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음을 밝힌다. 청해진 설치(828), 해상무역 장악, 왕위 다툼 개입(841), 암살(846) 등은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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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분의 한계를 스스로 깨뜨리는 용기를 배워보세요
  • 바다처럼 넓은 시야를 가져보세요
  • 실력으로 증명하는 삶을 생각해보세요
  • 완도 청해진 유적을 방문해 해상왕을 기억해보세요